마라톤역사 2500년!! 2500년 전으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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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윤희 댓글 0건 조회 2,072회 작성일 10-05-11 12:07본문
지금으로부터(AD 2010년) 정확히 2500년 전(BC 490년) 아테네의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는 페르시아(다리우스 王; 지금의 이란)군의 침공으로부터 아테네를 구하기 위해 약 250km 떨어진 스파르타로 원군을 청하러 달려갔다. 무려 40여 시간을 달려가 구원병을 청하니 스파르타로서는 다른 사정(실제로는 다른 폴리스Polis를 공격하고 있었음)으로 금방 출병을 할 수 없는 상황(표면적으로는 '스파르타 관습상 보름이전에는 출병치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움)설명을 듣고 바로 페이디피데스는 달려온 길을 거꾸로 다시 달려 아테네로 돌아가 그 사정을 보고하였다.
(1.대략 3∼4일 동안 약 500여km 를 달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필자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험난한 지형과 (지금보다 열악했을)도로사정, 높은 기온(30∼40℃),신발?, 식사 등을 감안할 때 정말 상상을 초월한 대단한 주자??임에는 틀림없다.
2. 이 역사적인 사실?의 과정을 기리고자 1983년부터 매년 9월 마지막주 금요일07:00시에 아테를 출발하여(제한시간 36시간) 스파르타(레오니다스 왕 동상)에 도착하는 스파르타슬론Sparatathlon 대회246km가 열리고 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상황을 보고 받은 아테네 군의 밀티아데스(Miltiades)장군은 페르시아 군과 싸우기 위해 마라톤평야로 진군하였고, 잘 달리는 중장보병을 전술적으로 운용하여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하였다.(현대의 군에서도 이 마라톤전투를 전술적인 측면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전쟁史에서 반드시 기술하고 있다)
승리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평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40여km 떨어진 아테네로 달려와 승전보를 전하고 페이디피데스는 사망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Herodotos의 역사서)
1차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는 10년(BC480년) 후 (그 사이 다리우스 왕은 사망하고 아들인 크세르크세스Xerxes왕)다시 아테네를 침공(2차)하였고 이때 테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에서 아테네를 도우러 온, 레오니다스(Reonidas)왕이 지휘하는 스파르타 원군(300여명)은 내통자(첩자)에 의해 우회로로 돌아온 페르시아군에게 전원 전사하게 된다.(영화 '300'의 줄거리: 필자는 스파르타슬론대회 참가후스파르타 시내극장에서 이 영화를 매우 감동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
육상에서의 전투는 패하였지만 이어진 살라미스(Salamis;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가는 왼쪽 해안) 해전에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Pericles) 장군의 지략으로 승리를 거두고 연이어 육상에서도 페르시아군을 패퇴시켰다.(아테네에 대한 페르시아의 연이은 패전으로 지금도 후신인 이란은 '마라톤'을 하지 않으며 공식대회에서 시행하지 않고 있다)
페리클레스가 건재한 동안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대해 별 다른 침략을 하지 않았으나, 페리클레스 사후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이후 28년간이나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략 위와 같이 마라톤에 관한 역사적인 정리를 해보며 2,500여 년 동안 면면히 흐르는 마라톤의 정신과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한 해(2010년)가 아닐 수 없다.
2500년 전 페이디피데스가 달렸던 그 주로를 다시 달리고 싶은
Muscle guy
이윤희 올림.
(1.대략 3∼4일 동안 약 500여km 를 달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필자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험난한 지형과 (지금보다 열악했을)도로사정, 높은 기온(30∼40℃),신발?, 식사 등을 감안할 때 정말 상상을 초월한 대단한 주자??임에는 틀림없다.
2. 이 역사적인 사실?의 과정을 기리고자 1983년부터 매년 9월 마지막주 금요일07:00시에 아테를 출발하여(제한시간 36시간) 스파르타(레오니다스 왕 동상)에 도착하는 스파르타슬론Sparatathlon 대회246km가 열리고 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상황을 보고 받은 아테네 군의 밀티아데스(Miltiades)장군은 페르시아 군과 싸우기 위해 마라톤평야로 진군하였고, 잘 달리는 중장보병을 전술적으로 운용하여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하였다.(현대의 군에서도 이 마라톤전투를 전술적인 측면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전쟁史에서 반드시 기술하고 있다)
승리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평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40여km 떨어진 아테네로 달려와 승전보를 전하고 페이디피데스는 사망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Herodotos의 역사서)
1차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는 10년(BC480년) 후 (그 사이 다리우스 왕은 사망하고 아들인 크세르크세스Xerxes왕)다시 아테네를 침공(2차)하였고 이때 테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에서 아테네를 도우러 온, 레오니다스(Reonidas)왕이 지휘하는 스파르타 원군(300여명)은 내통자(첩자)에 의해 우회로로 돌아온 페르시아군에게 전원 전사하게 된다.(영화 '300'의 줄거리: 필자는 스파르타슬론대회 참가후스파르타 시내극장에서 이 영화를 매우 감동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
육상에서의 전투는 패하였지만 이어진 살라미스(Salamis;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가는 왼쪽 해안) 해전에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Pericles) 장군의 지략으로 승리를 거두고 연이어 육상에서도 페르시아군을 패퇴시켰다.(아테네에 대한 페르시아의 연이은 패전으로 지금도 후신인 이란은 '마라톤'을 하지 않으며 공식대회에서 시행하지 않고 있다)
페리클레스가 건재한 동안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대해 별 다른 침략을 하지 않았으나, 페리클레스 사후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이후 28년간이나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략 위와 같이 마라톤에 관한 역사적인 정리를 해보며 2,500여 년 동안 면면히 흐르는 마라톤의 정신과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한 해(2010년)가 아닐 수 없다.
2500년 전 페이디피데스가 달렸던 그 주로를 다시 달리고 싶은
Muscle guy
이윤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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