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지는 만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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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남 댓글 0건 조회 1,835회 작성일 09-11-10 10:18본문
화창한 봄의 기운에 따라 싹을 틔우고 이내 녹음방초가 무성한 신록의 숲을 이루는가 싶더니 벌써 귓가를 스치는 찬바람과 함께 지천으로 날리는 무수한 낙엽들이 그 여명을 다하여 마지막 항거의 몸부림일까.
늘 새해의 시작과 함께 송구영신으로 들뜬 마음에 저마다 거창한 희망과 꿈을 싣고 한해를 맞지만 이제 그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거두고 흩어짐이 순환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흐름인데 특별히 인위적인 작태로 마무리를 의도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누구든 한해가 저물어 가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허전함이 팽배하여 서둘러 마무리를 하려는 습관적 경향이 있다.
아! 가을이여~
가을은 미망인의 계절이라던가.
혹은 우수에 젖는 사색의 계절 또는 낭만의 계절 및 남자의 계절 혹은 등화가친의 독서의 계절 등 그 어느 계절보다도 고래로 가을에 견주어 호칭하는 것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 가을은 의미가 깊고 진지한 성찰로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임에는 틀림이 없는가 싶다.
한때 이 때쯤이면 몽유병자처럼 습관적으로 늘 거리를 배회하거나 조용한 산사의 뒷길을 거닐거나 갖가지 청아한 유색의 단풍이 바람에 휘날리며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공원의 나무의자에 앉아 짙은 커피 향을 홀짝거리며 사색하고 향학에 불타던 청년학도의 시절이 어른거린다.
바야흐로 세월은 흘러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에 생각해본다.
나는 그간에 무엇을 얼마나 얻었으며 무엇을 위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세상에 올 때는 무일푼의 빈손으로 시끄럽게 왔다가 갈 때는 소리 없이 조용히 떠나가는 것이 인생길이라면 어쩌면 오늘을 산다는 것은 그 귀로의 여정을 순조롭게 맞기 위하여 준비하며 학습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나의 나뭇잎이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여 생각해본다.
바람에 마지막 저항의 몸짓으로 나부끼다가 그 위세에 못 이겨 나무에서 떨어져 바람결에 지천으로 맴돌다가 다시 거름이 되어 자연과 일체를 이루고 봄이면 싹이 트고 무성한 신록의 숲을 형성하여 그 전성기를 거치면서 유색의 단풍으로 그 여명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여로와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나도 이제 어언 그 청운의 야심찬 청년학도의 전성기를 거쳐 지천명의 초로에 진입함이 영락없이 만추에 지는 일엽의 운명을 앞두고 뉘엿뉘엿 퇴색이 짙어지는 이른바 초가을에 번져가는 검버섯이 아닐 것인가.
또 다시 내게 남겨진 향후의 30여년의 숙제를 더욱 멋지고 품위 있게 마감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득(得)을 위하여 또는 그것을 향하여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여생은 보다 실용적인 안목을 존중하며 공(空)을 향한 학습에 주력하며 신명나게 살아볼 생각이다.
거창하게 남을 위하여 봉사하거나 희생적인 삶의 방식보다는 나 자신의 실존에 충실하며 나를 바로 알고 실천하는 삶의 노선에 치중하면서 소박하고 진솔한 삶의 방식으로 일관 하고자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의 전라의 모습대로 모든 허례허식과 형식논리의 수레바퀴에 얽혀있는 관습의 찌꺼기를 일소하고 수시로 영욕의 껍질을 비워나가는 학습을 하면서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실존이며 실존은 곧 무위로서 움직이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건강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존재가치에 부응하여 비약적 표동으로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인생에 결코 히든카드는 없다.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활주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이며 지극한 가치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한해 두해 세월의 윤회를 추가함에 따라 결코 불노(不老)하고 영생할 것 같은 건강에도 위기로 다가오고 주변의 가깝고 사랑하는 친지나 지인들이 내 곁을 떠나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망연히 지켜보면서 입동의 만추로 이어지는 냉엄한 현실이 근엄하게 와 닿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고귀한 생명에 상응하는 흔들리지 않는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품위 있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내가 지천명에 이르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사회 또는 국가로부터 많은 조력을 받아왔으니 이제 그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하여 조금씩 나의 밀알 같은 능력과 지식이 필요한 이에게 베풀 수 있기를 바란다.
배고픈 이 에게는 빵이나 고기를 주어 순간적으로 위안을 주고 포만감으로 만족을 주는 것보다는 다소 아쉬움이 가고 미력하지만 그 빵이나 고기를 영원히 구할 수 있도록 확실한 방법이나 지혜를 주는 것이 보다 현명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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