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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질주는 존재가치의 확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상남 댓글 5건 조회 2,355회 작성일 07-12-28 03:01

본문

力動的인 疾走는 存在價値의 確認
- 마라톤 입문 통산6주년에 풀코스 100회 완주를 하기까지-

***잠깐!!! 내용이 장황하니 바쁘신 분은 적당한 길목에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마라톤을 하기전에
*금연을 결심하면서
*드디어 금연에 성공
*불어나는 체중감량을 위하여 등산을 결행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마라톤풀코스의 대장정을 위한 점화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의무대인 보스턴티켓을 따내고 보스턴으로
*100회마라톤클럽에 가입
*마라톤은 철학이며 깊은 사색과 필승의 신념으로 도출되는
인고의 결실
*가자! 마스터스의 꿈 서브3의 길로
*풀코스 100회완주달성
*여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마라톤을 하기 전에

우리 나이 불혹에 이르도록 내가 특히 건강을 의식하여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적절한 섭생 및 취미활동 등으로 건강관리를 한 적이 전혀 없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할 이유나 필요를 솔직히 느끼지도 못하였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경직된 사무직에 종사하면서 시달리는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 두 갑 이상의 끽연습관과 퇴폐적인 오락문화에 젖어 일시적 유희를 즐기던 것이 전부다.

당시만 해도 나의 건강관은 이렇다.
‘아픈데 없고 잠을 잘 자며 취식에 문제가 없다면 건강하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확신이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서 주변의 가까운 친지들이나 지인들이 서로 동호회를 조직하여 취미활동을 하거나 산행을 즐겨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나는 비웃고 있었다.
젊어서 부질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생각될 뿐이다.

정녕코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을 자거나 소설나부랭이를 붙들고 있음이 더 보람 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금연을 결심하면서

직장 내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환경권 보호차원에서 금연운동의 열풍으로 사내에서는 흡연을 할 수 없도록 강한 조치를 취함에 따라 그렇게 좋아하던 끽연도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옆자리 동료나 주변인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어디를 가서도 별로 달갑지 않는 대접으로 경원시하는 풍조에 따라 마치 죄책감 같은 것이 꼬리를 물면서 급기야 금연을 하기로 결행하였다.

20년 동안의 흡연습관을 일거에 제거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는 일이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경험자만이 알 것이다.

종전에도 백해무익한 흡연으로부터 단절하고자 몇 번 금연을 시도해 보았으나 번번이 안이한 시행착오로 실패한 경험이 있는 점에 비추어 보다 강한 정신무장이 필요함을 절감하여 이 기회에 반드시 실행해 보이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번에도 금연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여생을 살아가면서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현실생활로 주종을 구별할 수 없는 무책임하고 자신 없는 의지박약자로 낙인을 받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경으로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시험하고자 하였다.

나는 평소에도 마음에 품은 무슨 일이나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급한 성격상 당장 지금부터 실행하는 습관이 있으며, 부득이한 일이 없는 한 내일로 미루거나 지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친 김에 당일인 토요일 아침에 출근하여 일주일간 휴가를 신청하였다.
순전히 금연을 하기 위한 휴가인 것이다.

금연을 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후회도 미련도 없이 입에서 매캐한 니코친 찌꺼기로 인해 토악질이 나올때까지 담배를 피워보기로 하였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아침까지 무려 12시간 동안 동양화 놀이와 함께 계속되는 줄담배로 심지어는 한꺼번에 두개피의 담배를 입에 물고 피워대면서 미련스럽게도 하룻밤 새 적어도 다섯 갑은 족히 피워 대었으리라.

내일이면 이제 내 사전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흡연습관과의 절연을 위하여 미련도 후회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하룻밤 새 많은 양의 담배를 피워 본 적은 결코 없다.

드디어 결전의 날인 일요일 오후를 맞는다.
간밤에 엄청 많은 양의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대서인지 입에서는 매캐한 니코친 부산물로 목이 껄끄럽고 정신이 혼몽하기도 하여 하루는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틀째 되는 날 오후가 되니 흡연의 욕구가 일어난다.

지난번에 일시적으로 금연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유가 피다 남은 담배와 제털이를 버리고 나서 삼사일이 지나고 나면 강한 흡연욕구를 못 이겨 노상에 뒹구는 꽁초를 주워서 다시 물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면전에 담배를 놓고 언제라도 손만 내밀면 담배를 잡을 수 있도록 담배 한 갑을 놓고서 금연훈련을 시도하기로 작심한터이다.

흔히 금연을 시도하면서 침술이나 금연보조파스 등 보조수단을 이용하는데, 나는 전혀 그 어떤 도움이나 보조기를 사용함이 없이 순전히 의지적으로만 절연하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최초 흡연을 시작할 때에도 내가 좋아서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것을 이제 반대로 절연하는데도 자유의지로 결행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금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흡연욕구를 잠재우고 담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가능하겠기에 치열한 극기전으로 수련을 끝내고 일주일 휴가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하여 옆에서 동료가 맛있게 피워대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미칠 지경이다.

금연 일주일이 경과하면서 언제 내가 흡연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아스라이 먼 옛날의 화신이거나 막 꿈속을 배회하다 깨어난 것처럼 비몽사몽 혼몽한 상태인데다 보란 듯이 옆에서 동료가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입안가득 연기를 머금고 배출하는 희뿌연 연기를 보노라니

“저렇게 맛있고 향기로운 담배를 왜 내가 끓고자 하여 허둥거리는가 ?
지금 당장 내 건강이 악화되어 반드시 금연해야할 정도의 긴박감도 없지 않는가?

담배가 백해무익하다지만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고작 기껏해야 오십년도 못살진대 저렇게 맛있고 향기로운 담배를 꼭 끓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담배를 피우고서도 백 살까지 사는 노인들도 많은데 구태여 금연을 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단명을 촉구하는 사실이 검증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모든 것은 타고나면서부터 팔자소관이며 궁극에 이르러 하늘의 부름을 받고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존재인데 수백 년을 해로할 것처럼 담배를 끓자고 야단법석이란 말인가?”

등등의 오만가지 잡념과 유혹으로 그럴싸한 자기변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 감미로운 유혹에 흔들리어 오락가락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무척이나 어려운 곤욕을 치루어야만 했다.

흔히들 마라톤에 있어서 아마추어 마스터스의 꿈의 기록인 서브쓰리를 이룬 것을 비유하여 인간의 최고의 지혜를 검증하는 국가최고 시험인 사법시험 보다도 어렵다고 하는데, (사법고시 합격자는 매년 1,000명이상이 배출되는데 반해 서브쓰리는 그 보유자를 전부 통산해도 겨우 1,000여명을 상회하는 정도이다.) 사견이지만 실로 금연에 성공하는 것은 서브쓰리를 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금연에 성공

나는 위와 같은 동기에서 결연한 나의 자유의지를 시험대에 놓고 감미로운 유혹과 자기변명의 사슬에서 벗어나 비로소 금연에 성공하여 지금까지 11년을 맞고 있다.

한술에 배부르지 않고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교훈이 의미하는 것처럼 마라톤에서도 바로 서브 3의 문턱에 접근할 수 없고 점진적인 기록향상을 통하여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꿈의 전당에 입문이 가능하듯이 금연을 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유혹을 물리치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단계별전략을 수립하여 철저하게 실행한 결과라 생각한다.

즉 금연 후 1주일이 지나면서 심각한 금단현상에 부딪혀 오만가지 유혹을 물리치기 위한 최면의 일환으로 “이제까지 금연을 위해서 참아온 일주일이 아깝지도 않는가? 나는 할 수 있어. 앞으로 8일만 더 참자” 그래서 15일 전략, 그다음 15일을 더하여 한 달, 3개월, 6개월, 1년의 목표를 설정하고서 실행한 결과이다.

불어나는 체중의 감량을 위하여 등산을 결행하다.

일단은 목표한 금연에 성공함에 따라 왕성해진 식욕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군것질을 비롯하여 식도락으로 취식한 결과 불과 금연 후 6개월 만에 체중이 무려10kg이나 증가하고 있었다.

체중이 증가함에 따라 몸이 무겁고 행동이 완만하여 피로하기도 하여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잠이 오는 것이 자연적인 인간의 생리현상인지라 날이 갈수록 체중이 불어나고 누우면 그야말로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 호흡이 부자연스럽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던 중 어느 날인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무언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무기력한 삶의 극치로 전락하여 생동역이 매장될 것만 같았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갖고 다급한 마음에 내 사전에 운동이란 것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우선 인근의 사라봉에서 별도봉에 이르는 산책로를 택하여 매일 규칙적인 속보로 1시간 이상을 운동하고 주일에는 반드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라산 정상등반에 나섬을 필연적 일과로 부여하여 실행하였다.

이렇게하여 향후 5년동안은 한라산정상에 출석부를 매달아두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눈이 오거나 비가오는 날에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호후중에도) 개근으로 등반을 일삼은바, 1년이면 50회정도 등정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기초체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별로 체중을 감량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매번 등반을 하면서도 정상까지 논스톱으로 산행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때마다 기록채크를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실행하였다.
마치 기록단축을 함으로서 기네스북에 도전하려는 것처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팔월 초만 하더라도 애향운동장은 나의 유일한 홈그라운드이며 당찬 희망과 도전이 살아 움직이는 훈련장이기도 하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도내 공식적 마라톤대회라곤 고작 매년 유월 초순에 대한관광협회가 주최하는 “제주마라톤축제” 행사가 유일할 뿐이다.

그 만큼 마라톤을 하는 인구도 적어 대회를 유치할 명분이나 이해타산의 결핍으로 대회유치를 주저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고루한 생활방식에 익숙한 편견으로 인해 마라톤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문제가 아닐까한다.

즉, 마라톤을 하는 것은 국가적인 대표선수나 달리기에 대하여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이 있는 적어도 이삼십대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직업적 소명의식 등을 갖고 부득이하게 달려야 하는 힘든 운동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의 바탕에 이질적인 문화의 소산인 조깅문화가 일찍이 싹트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나는 운동에 대한 소질이나 능력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는 문외환인데다가 마라톤에 대한 상식이나 기초정보도 전무하여 마라톤을 한다는 자체가 언감생심 소가 지나가면서도 웃을 정도의 무모한 결행이 아닐 수가 없다.

다만, 30년 전에 군복무를 하면서 보병 수색대에 편입하여 매주에 한번정도 시행하는 수색정찰 및 완전군장(무게 10kg)구보를 정기적으로 했던 경험과 집요한 정신력만이 최고의 무기이며 자신감의 발로로 삼아 마라톤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될 줄이야 ...

대개의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시작 동기가 그러하듯 나도 처음에 마라톤을 의식하고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날이 불어나는 체중관리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조깅차원에서 맹목적으로 운동장의 트랙을 중심으로 달리다보니 자신감을 얻게 되어 풀코스도 어렵지 않게 완주하게 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애향운동장을 중심으로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하게 된 연유는 위에 설시한 것처럼 단순히 체중감량을 위해서 근본 목적도 있었지만 그 부가적인 목적은 바로 두달전에 매년 관광협회 주최하에 열리는 마라톤축제 10킬로 부문에 참가하고 나서의 깊은 성찰에 기한 연유이기도 하다.

즉 2001, 6. 마라톤축제에서의 10킬로부문에의 출전은 전혀 기본적인 준비과정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참가하여 완주하였는데 그 기록이 1시간 8분대를 넘고 있었다.

좀더 내실있게 준비하여 마라톤다운 마라톤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일단은 처음부터 골인점까지 한번도 쉬거나 걷지 않고 뛰어서 완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주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매일 10킬로에 이르는 거리를 측정하여 애향운동장내 트랙이나 그 외각을 달림으로써 적어도 주5일을 달려서 3개월을 훈련하여 최초 공식대회인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인근에서 열리는 하프대회에 출전하였던바, 1시간 42분대로 골인하는 결과로 인해 강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 이후 본격적인 훈련 및 대회참가를 하는데 도화선이 되었다.

실로 마라톤에 입문하여 3개월여만에 최초로 출전한 하프대회에서 위와 같은 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서 무한한 용기와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이후 향후 3개월에 걸쳐 하프대회 3. 4회를 연거푸 출전한 결과 그때마다 최고기록을 달성함으로써 마침내 1시간 30분대로 진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좀더 거리를 늘려 풀코스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마라톤풀코스의 대장정을 향한 점화

이무렵 그러니까 내가 다대포대회에 참가한 즉후부터 마라톤에 대하여 막연히 조금 안다는 정도의 얇은 지식을 터득할 무렵에 도내 달림들 몇몇이 의기투합하여 보다 조직적인 클럽을 만들어 체계적인 훈련으로 마라톤에 대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지금의 제마클을 창단하는 모태가 되었다.

그래서 당시 제마클이 이제 막 창립하여 본격적으로 그 열정을 불태우며 선의의 경쟁의식의 유발로 이왕 하는 마라톤이라면 인간한계인 풀코스에 도전하여 4시간 안에 (남자기준)완주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이자 보람으로 여기며 클럽내에 지인들로 하여금 회자하며 유혹하는 당시의 풍조에 편승하여 나도 아직은 때이른 감이 있지만 제주인 특유의 자존심이랄까 오기가 발동하여 풀코스에 출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마라톤에 입문하여 7개월 여만에 풀코스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자초하고 말았다.
시기상으로 보아 기왕에 시작하는 풀코스라면 국내 최고의 매이져대회로 각광받고 있는 서울동아국제마라톤을 택하였다.

막상 출사표를 던지고 대회일이 박두함에 따라 이제까지 고작 25킬로 이상을 달려보지 않는 경험에 비추어 과연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함께 두려움마져 들었다.

대회일 2주전에 풀코스에 준하는 거리를 실제로 달려보기로 하여 관음사 도깨비도로 진입로에서 출발하여 산록도로를 경유하여 황소가든 앞에서 턴하여 돌아오니 4시간 20분대이다.

제주도에서도 최고의 난코스로 소문난 관음사일대에서 완주했으니 실전에서는 4시간 전후로 해서 완주는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도래하여 그 전날에 광화문 일대에 숙소를 정하였다.
잠시 여장을 풀면서 내일이면 전개될 세계의 프로급 주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건각들과 부대끼어 서울의 최고 도심지인 광화문을 경유하여 서울 시내를 질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흥분하여 여러 감회가 서린다.

특히 여기 광화문일대나 종로, 을지로,청계천, 동대문 등의 지역은 내가 막 고교를 졸업하고서 사법고시에 대한 도전을 불태우며 청운의 꿈을 실현하고자 주경야독을 펼치던 현장이기도하여 더욱 격세지감의 감회가 새롭다.

잠시 청년시절의 회한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30여년전에 가정형편이 빈곤으로 정규고교에도 진학하지 못하여 겨우 야간부 3년의 과정을 어렵사리 수료함에 따라 대학진학의 꿈은 엄두도 나지 않아 당시 불타는 향학열에 끝없는 고민과 번뇌를 거치면서 대학에 가지 않고서도 능력에 따라 기회균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인 사법시험을 동경하며 고난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고학으로 그 꿈을 실현하고자 무작정상경하여 신문배달, 독서실총무, 시내버스 검수원, 공원, 여관조바, 룸싸롱의 웨이터, 공사판의 막노동 등의 온갖 고진감래를 반복하던 청년시절의 눈물어린 고뇌의 현장에 강산도 세 번이나 변할 수 있는 30여년 만에 돌아와 다시 이거리를 기량껐 내 달린다는 생각을 하니 주마등처럼 과거의 영상이 반추되는 것 같기도하여 설레이기도 한다.

생각을 돌이켜 그때 그 시절 서울에서 약관의 나이에 고학생활을 통하여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 두 가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이를 말하기 전에 나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고학동기를 간단히 살펴본다.)

우선, 나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정경제의 결핍으로 인하여 대학진학의 꿈이 요원해짐에 따라 그 불타는 향학열을 잠식할 수 없어 여러 궁리와 장고 끝에 사법고시를 향한 독학도로 변신하여 온갖 고초와 풍상을 경험하여 청년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시골에서 중학교 과정은 따뜻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무난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탓도 있었지만 엄격한 아버님의 교육방침이기도 하였다.

즉 아들 4형제 모두를 차별 없이 중학교 과정을 졸업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 중 학업성적이 우수하거나 면학욕이 뛰어난 자의 1인에 한하여 고교진학을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4형제 중 막내인데, 위에서 3분형님들은 아예 공부에 별 취미나 의욕도 없는지 중졸과 동시에 일찍이 사회에 진출하여 산업현장에 투입되기를 원하여 각자 가고자하는 분야의 길을 따라 나선바이다.

나 역시 중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에 대한 관심이나 또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등 학습방법의 부지로 인하여 특별히 학업성적이 우수하거나 주목할 만한 특기도 없이 중 1.2학년을 평범하게 보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접해보는 영어만큼은 강한 호기심과 신기함을 느끼며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단어장을 만들어 등하교길에 외우며 다닌 결과 하루에 적어도 100단어씩 암기하여 약 2,000단어를 암기했던 사실과 그 어떤 과목보다 영어과목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감을 갖고 공부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여 어떤 요령으로 공부해야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을 지에 대하여 희미한 안개 속을 배회하는 듯 의욕은 있으나 바른 길을 찾지 못하여 궁색하던 차, 중3에 이른 어는 날 옆에서 절친하며 부지런한 친구가 잘 정리된 노트와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독하는 모습에 감화되어 나도 따라서 실행했더니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어 고득점의 성적을 얻어냄으로써 비로소 “공부는 이렇게 하는 구나”하고 절실한 깨달음 끝에 나의 시련과 고난의 과정은 여기서부터 싹텃다고나 할까?

중3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교입시를 위해서 졸음을 좇아가며 불철주야 학습에 매진하는 학급동료들을 보면서 내게 있어서는 뚜렷한 목표를 향한 방향설정도 없이 그저 막연히 컴컴한 터널을 기약도 없이 걸어가는 형국이었다.

일찍이 아버님으로부터 고교진학의 유훈에 따라 내가 일반고교에 진학 할려고만 하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시 어려운 농촌생활에 여러모로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 잘 배워 잘살겠다고 염치없이 불효를 하는 것 같아 차마 정규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졸학력을 갖고 가파른 세상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무모하고 초라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어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일단은 부모님으로부터 입학에 이르는 절차과정인 1학기 입학금 및 등록금만 부담하면 나머지는 내가 고학을 통하여 고교과정을 마치리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유일하게 제주도내에서 야간부가 설치된 학교는 제주상고 뿐인지라 제주상고에 출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고교입시를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고는 하지만 너무 시간이 촉박한데다 쏟아지는 잠에서 깨어날 자명종시계가 절실하여 제주시로 시집온 누님 댁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기로 하여 시골집에서 제주시까지 약 40킬로에 이르는 거리를 하루종일 걸어서 왔던 일이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상업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여 부모님의 도움으로 1학년은 무난히 마쳤으나 2학년이 되면서부터 신문배달을 비롯하여 제주시 칠성로에 위치한 양복점에서 보조원으로 종사하다가 제주시청에 사환으로 취직이 되었다.

당시 보통 경찰서 또는 기타 관공서 등에서 사환의 급료는 5,000원 정도 받으면 고학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는데, 더구나 나는 운 좋게도 어렵게 제주시청에 종사하게 되어 월 7,000원에 시작하여 점차 12,000원까지 받게 되어 생활하는데 비교적 여유가 생겨남에 따라 움츠러 들었던 향학열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추운 겨울날 아침에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등청하여 걸레를 빨고 책상을 딲고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데, 오현고, 제주일고. 신성여고 및 제주여고 학생들이 배움터를 향하여 힘차게 밝은 모습으로 등교하는 광경을 보고 당시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여 그날 이후로 침식을 멀리하며 직장이고 학교도 다 집어치우고 싶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꼭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좋은 환경과 부모슬하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마음대로 공부하고 깨끗하고 주름 잡힌 교복을 입고 정규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활보하는데 나는 무엇인가. 허구헌날 자취를 하며 끼니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고 고작 라면 등으로 취식을 때우고 공부하고 싶은 열정을 잠재우고 주경야독의 현장에서 시시콜콜한 직원들의 담배심부름에서 혹한의 아침에 차가운 물로 걸레를 빨고 청소를 하느라 손은 거북등처럼 갈라져서 피는 솟구치어 온갖 수모와 박해를 감내하며 주경야독을 한다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가지에만 몰두한다하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려면 처절한 인내와 고통이라고 아우성치는 판에 그나마 감수성이 예민하고 혈기왕성한 청춘에 따뜻한 끼니도 챙기지 못하여 산업현장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이중고를 이겨나가기란 여간한 고역과 진통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직장을 그만 두고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확보하여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생활이 어려우면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나아가리라 생각하고 이후 시골 부모님께 전후 사정을 소상히 설득하는데 어렵게 성공하여 집에서 사육하던 어미돼지 한 마리를 처분한 20,000원으로 우선 사법고시에 필요한 일부 과목을 구입하니 겨우 8권을 살 수 있었고, 나머지 부족분은 수소문하거나 사정하여 선배로부터 빌려다가 필사본을 만들어 사용하던 적이 있다.

이렇게 하여 나는 향후 5개월 동안은 미친 듯이 공부에 몰두하여 수면시간 4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하는데 주력하였던바, 총 하루 18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깨어있을 때는 언제나 책을 놓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심지어 밥을 지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시간이 아까워서 공부에 매진하였고 화장실에 갈 때에도 책을 들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말 그대로 수불석권(手不釋卷) 이었고 이러다보니 혈맥이 불통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때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지 않았나싶다.

이렇게 하여 겨우 고등학교 과정은 마칠 수 있었으나, 대학진학의 꿈은 아스라이 멀기만하여 나중에 기회가 오면 수학하기로 하고 비로소 그 대처방안으로 우선 실력향상을 위하여 명실상부한 법학도로써 충실을 기하고자 사법시험의 준엄한 고지를 향하여 기초지식을 배양하는데 안간힘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공부하는데 전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력으로 민생고 해결과 함께 두 가지 문제를 양립할려고 하니 그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실정이었다.

그리하여 고향에서는 더 이상 내가 고학하는데 무력감을 느낀 나머지 이왕이면 큰 물에서 대성하고 돌아오자고 작심하여 공사판에서 약 1주일 동안의 품삯을 챙기고 ‘남아입지 학고불성 사불환 (男兒立志 學苦不成 死不還)’이란 유서 아닌 유서를 남기고 무작정 상경을 하게 되었다.

이제 앞에서 광화문거리를 회상하면서 잊지 못할 2가지 사연 중 하나를 말하고자한다.
당시 서울의 거리는 통행금지 제한으로 밤 12시에 통행을 금지하여 새벽 4시에 해제 되었다.
최대한으로 숙식문제를 저렴하게 경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종로6가에 위치한 사설독서실을 이용하기로 하여 소지품을 넣어두면서 적절한 일자리를 구할때까지 숙식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방편으로 활용하면서 낮에는 각종 신문에 난 구직광고들을 취합하여 구직을 하느라 사방팔방으로 배회하였다.

구직을 하면서도 일정한 조건이 있다.
나의 일단의 목적은 고학이기에 기본적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정도의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그 경제적 수익이나 보수가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한 여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선호하다보니 자연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신문의 구직광고에 나의 구미에 맞는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명동에 있는 “던힐싸롱”이라는 유흥음식점인데, 침식제공에 월수입 50,000원 보장, 근무조건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근무에 경리직이라는 것이다.

당시 1977년도의 물가현상에 비추어 50,000원이라면 적지 않는 거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제적 수입에다가 침식이 해결되고 그나마 여유시간도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쾌재를 부르며 찾아간 결과 업주측으로부터 근무중 불의의 불법행위나 도난사고등에 대비하기 위하여 신분보증용으로 보증금을 요구한 것이다.

일응은 수긍이 되어 별 의심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총재산을 털어 거금 20,000원을 보증금으로 제공하였다.
그런데 개업예정일로 지정된 날짜에 갖더니 인적 물적시설이 불비로 인해 개업일을 부득이하게 연장하게 됐다는 이유로 며칠만 더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전후의 징후가 탐탁지 않음이 감지되기도 하였으나 일단은 속는 셈치고 한 번 더 기다려 보자는 심산으로 3일후 다시 돌아와 보니 사정은 마찬가지이고 설상가상으로 보증금을 수령한 상무란 사람이 이틀전부터 종적을 감추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문광고를 보고 구직을 위하여 보증금을 담보로 기망을 당한 피해자는 나를 제외하고 약 10여명에 이르고 그중에는 여자가 8명인데, 심지어는 현금이 없으니까 현금에 갈음하여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시계 및 반지 등으로 보증금의 대용수단으로 맡긴 피해자도 있는가 하면 어떤 여자는 이마져도 없으니까 하룻밤 손님께 봉사하는 명목으로 정조를 유린당하여 흐느끼는 피해자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아하! 서울의 인심이 멀쩡한 사람 세워놓고 코 배어 간다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내가 그간 너무 순진하며 안이하게 세상을 살아온 안목이 좁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며 그냥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을 응징하기로 마음먹었다.

젊음의 징표는 무엇인가?
부정과 불의를 배격하고 정의를 사수하며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말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선열 및 순국투사들이 그 강인한 투혼과 자존심으로 점철된 피의 응징의 표본이 의사진생 (義死眞生) 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항차 나는 법조인을 지망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따뜻한 밥과 그리운 부모슬하를 벗어나 고진감래를 자초하지 않았던가?

선량한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내 어찌 무사안일로 방관할 것이며, 비록 내 작은 힘이 구현되어 이 사회의 사악한 무리의 일부를 단죄하고 다수의 피해를 전보받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보람이 아니며 당연한 선비정신의 발로가 아닌가?

이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남대문경찰서의 도움으로 피의자인 사장과 독대하여 개과천선의 다짐과 함께 피해전말의 보상금을 받아냄으로써 피해자들을 대부분 귀향조치하여 일단락되었다.

그 두 번째의 일화는 고학하는 과정에 정규대학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서울시내 대학등 이를테면 동국대 ,건국대 , 고려대, 한양대에서 개설된 법학 강의실에 입실하여 상당기간 도강을 일삼았던 사실이다.

특히 서울대학교에서 청강을 하고 싶었으나 학교입구에서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바람에 실행이 어려워 포기했고, 고려대에서는 학생증 요구는 하지 않아 쉽게 입실은 할 수 있었으나 당시 정황으로 학생의 징표를 묵시적 요청상 고려대학교 뺏지를 구입하여 앞가슴에 부착했던 일이 있다.

잊을 수 없는 일은 위와 같이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선의의 도강을 받는 과정에 종로 낙원동에 위치한 건국대학교 이부대학에서는 졸업고사를 대신 치러준 사실이 있음이다.
이때가 내 나이 20세가 되던 때이니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리하여 지난날들의 추억과 회상을 더듬으며 명일 아침에 전개될 레이스를 그리며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비몽사몽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말았다.

드디어 8시 정각에 결전의 출발라인에서 오색영롱의 축포를 신호로 전국의 1만여명의 건각들과 함께 물결을 이루어 저마다 힘찬 레이스의 질주를 다짐하며 광화문사거리를지나 남대문로를 향하여 역주를 하는데 나는 간밤에 너무 긴장한 탓으로 수면장애에 원인이 있는지 몸이 무겁고 다리도 내 다리가 아닌 듯싶고 호흡도 거칠기만 하다.

전적으로 몸의 흐름에 맡겨 겨우 5킬로를 지나고서도 좀체 안정된 레이스로 적응을 하지 못하여 안절부절 하는 새 10여 킬로를 통과하고서야 다소 경직된 다리의 근육이 풀리면서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여 경쾌한 질주로 25킬로 까지 내달려 본다.
연도에서 성원과 격려로 아낌없는 박수갈채와 함께 하이파이브로 환호하는 서울시민들께 답례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그런데 25킬로를 지나면서 보니 일부 주자들이 걷는 주자들이 하나 둘씩 있는가하면 전봇대나 기둥을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는 참가자들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남의 일처럼만 보이던 것이 내게도 27킬로쯤에서부터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페이스가 다운되는가 싶더니 무기력한 몸의 상태를 이끌고 나름대로 강한 최면을 걸면서 35킬로에 이르렀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7킬로. 실로 마라톤의 벽이라고 회자되는 이지점부터가 진정한 마라톤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인간한계의 극한 상황이 아닐까 한다.

나는 오늘로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한계인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다.
그리고 반드시 완주할 것이다. 기록은 내게 별로 의미가 없다.
오직 완주를 위하여 건재한 모습으로 잠실경기장의 메인스타디움을 향하여 역주할 뿐이다.

37킬로 지점에 이르니 왼쪽 다리 종아리며 오른쪽 다리의 허박지 부분에 근육경련의 조짐으로 더 이상 운신을 거부하므로 여기서 약 7분을 할애하여 전봇대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약 300미터를 걸으며 천천히 뛰노라니 38킬로 표지판이 보인다.

아 이제 남은 거리 4킬로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것이다. 이제부터는 강한 정신력으로 밀어붙이자. 인생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모진 역경과 격랑의 고진감래로 가난과 싸우면서도 의연히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정신력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남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아니 남들이 할 수 없다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다.

새로이 시작하는 단거리 4킬로를 위하여 질주하는 마음으로 체내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짜내어 무아지경에서 오로지 완주만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 옮기다 보니 어느 새 40킬로 표지판과 함께 전방에 잠실경기장의 매인스타디움의 거대한 지붕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연도에는 많은 시민이 삼삼오오 군중을 형성하여 힘겹게 레이스를 펼치는 주자들을 위하여 뜨거운 성원과 박수로 힘을 불어 넣어주니 나의 가슴에도 뭉클한 불기둥 같은 것이 솟아오름을 느끼는 순간 놀랍게도 엄청난 파워가 충전되어 미친 듯이 역주에 역주를 거듭할 수 있었다.

결코 좌절할 수 없는 제주인의 자존심과 강인한 저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리라.
여기서 남은 2킬로미터를 질주하는 동안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무수한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힘차게 잠실경기장의 골인점을 향하여 질주하였다.

피니쉬라인에 이르러 계측을 보니 4시간 1분 57초의 기록임을 확인한다.
아아. 드디어 해냈노라. 완주했노라. 비록 아쉽게도 4시간을 넘긴 기록이지만 마라톤에 입문하여 7개월여만에 풀코스에 도전하여 언감생심 불가능할 것만 같은 풀코스를 완주했노라. 내 생애에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성취의 결실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최초의 기쁨이 아닐까한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매이져 대회에서 수도서울의 최고의 도심지인 광화문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대문을 경유하여 잠실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열렬한 시민의 응원을 받으며 영광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최고의 영광이며 축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하여 앞으로 여생을 살아가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질없는 선입견이나 무사안일의 껍질을 모두 벗어버리고 새로이 태어나는 자세로 보다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삶의 질을 꾸려 나갈 것이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행 티켓을 따내고 보스턴으로

나는 서울국제동아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하여 완주함으로써 마치 파충류가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것처럼 내게 안착한 무사안일의 고정관념이나 형식논리에 부응하는 의례 및 부적절하고 소극적인 관습의 찌꺼기들을 벗어버리고 진취적이며 실용주의적인 안목을 갖고 여생을 채워 나가고자한다.

끊임없는 도전이 있는 한 결코 불가능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생은 목적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또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최고의 가치는 바로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갈구의 대상이지만 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제기되는 자기수련과 합리적 지성과 자유의지에 의해 불요불급한 관습이나 생활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혁신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 불쾌를 피하여 쾌락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따라서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건강한 육체가 전제된다고 하여 건강관리를 위해 아무리 운동이 좋다하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한 운동습관을 생활화함이 없이 일시적이며 불규칙으로 운동을 한다고 해서 건강이 유지될 수는 없다.

지속적이며 꾸준한 운동습관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운동시간을 매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기 위해서는 다양화된 생활양식에 따라 살아나가는 현대인의 의식구조에서 부득이 중요가치를 선별해 냄으로써 합리적 가치를 위해 접근하고자하는 자기희생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체의식을 갖고 몸을 지탱하며 운신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건강관리를 위하여 운동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바로 나 자신이며 남이 아니고 환경이 아니다.
나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시간이 나를 위해 기다려주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절로 생성되지는 않는다.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과감한 투자와 용기로 실천적 의지가 없는 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술 마시고 놀며 유희를 즐기는 데도 각기 저마다 이유와 그럴듯한 변명이 있을 수 있다.
직장이라는 이유 또는 부득이한 접대성 인사치례라든가 기타사정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확보가 어렵다는 사람을 보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며 지각없고 무책임한 자기변명이며 회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직장도 중요하고 적당한 오락이나 휴식 및 취미활동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무슨일이나 하나하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며 중요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주관적인 자기편견이나 취향 등 좋고 좋은 것이 그만이다는 무사안일의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생활방식에 편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객관적 자아실현을 통해 보다 진취적이고역동적인 현실을 구현하는데 인색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직장의 상사나 지인들과 중요한 약속을 하면서 상응한 접대로 음주를 하는 것만이 최고의 능사나 보배는 아니며 달리 대체수단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을진대, 이미 길들여진 고정관념과 더욱 내가 술을 좋아하니까 이른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을 쫒다보니 이것만이 최고의 접대이며 당연시하는 풍조가 성행하는 이유가 아닐까.

술 권하는 음주문화의 소산으로 한 잔술이 열 잔이 되고 다시 2차 및 3차로 이어짐에 따라 취기가 상승하여 마침내 사람이 술을 먹었는지 술이 사람을 먹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인사불성의 흐물흐물한 감각과 취기에 의존하게 되어 기회만 되면 음주문화로 패턴을 이어가고자 스스로 또는 묵인되는 환경에 이끌려 가는 자신을 다스지 못한 잘못을 책하지는 않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궤변을 늘어놓거나 부득이한 직장생활 탓으로 몰고 가는 성향의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치 술을 먹지 않고 건전한 취미생활이나 여가를 이용하려는 선량한 사람들을 칭하여 “고지식하고 경직된 사람”으로 명명하거나 술자리를 마다하면 직장의 상사나 지인들에게 밑보여 직장에서 쫒겨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의 불리한 인과응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웅변적으로 대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소중한 노력의 댓가에 따른 금원을 사용하면서 경제원칙이나 합리적 발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편의주의적 생각만으로 돈 잃고 건강도 잃고 나중에 패가망신의 지경에 이르러 후회한다면 직장이나 접대를 받았던 사람들이 나를 옹호해주거나 응분의 책임으로 보상을 해줄 수 있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유흥을 즐기는 그 자체를 나무랄 이유는 전혀 없다.
자유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합리적 자유의지에 기해서 스스로 좋아서 선택했고 충분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선호한 이상 자기책임의 분명한 귀결임을 자인하여야 할 것이고 부득이한 환경탓으로 돌리거나 궁색한 변명으로 선량한 지인들을 현혹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인간적 자유본능을 구사하여 얻고자 하거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의 욕망에 비하여 인간에게 허여된 여명이나 하루에 부여된 24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유한한 존재다.
빗물이 흘러 흘러 강이나 하천을 통해 궁극에는 바다로 이어지듯이 인간도 때가 되면 반드시 가야하는 존재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가를 확연히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얽메어 살기 때문에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고 혼돈을 거듭함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춘하추동의 자연의 섭리가 명백한 순행으로 우리가 확연히 인지되듯 우리의 운명이나 여명은 종착역을 향하여 궤도를 달려 나가는 순행열차에 동승했다는 사실이다.

종착역에 이르는 시기는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10년 후 혹은 3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유한한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 필연적인 운명을 회피하거나 역행할 수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하염없이 수수방관적으로 방임하기 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인식을 통해 최후를 준비하고 남겨진 여명을 건재하게 보전할 수 있는 대비책이 강구되어야 하리라 본다.

이렇게 한시적인 공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욕심은 다변화하고 무한하여 그 전부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경제의 원칙이나 합리적 사고방식에 의해 신중히 조정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하여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은 바로 마음가짐의 방식에 의해 좌우되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이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그 무엇을 할 것이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는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실로 도저히 내 사전에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마라톤 풀코스를 2002. 3. 17 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무난히 완주해 냄으로써 확실한 자신감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여생을 보다 역동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길은 바로 마라톤임을 확신한다.

그리하여 동아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 1달 후 서귀포에서 열린 제7회 마라톤축제에서 풀코스에 도전하여 3시간 48분대에 진입함에 따라 서브4를 이루었고 그 후 5개월 후인 9. 29임진각에서 열린 통일마라톤에서 3시간 32분대로 골인함과 아울러 다시 한 달 후 10. 27.동아경주대회에서는 3시간 16분대로 골인함에 따라 아마추어의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보스턴대회 참가자격을 확보하는 영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마라톤에 입문하여 1년 2개월 만에 풀코스 최고기록인 3시간 16분대 기록달성과 함께 보스턴의 무대에서 질주할 수 있는 참가권을 쟁취한 것이다.
(당시의 나의 연령을 기준으로 보아 보스턴 참가기준치는 3시간 30분 59초의 내의기록임)

아마추어 마라토너들로 하여금 유행처럼 회자되는 꿈의 3개를 지목하자면 보스턴 참가기준내의 기록으로 완주하는 것, 다음으로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실제 참가하는 것, 서브3의 기록 즉 2시간 59분 59초내로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그 첫 관문을 통과하여 두 번째 관문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9박 10일의 일정으로 보스턴대회에 맞추어 부부동반으로 장도에 올랐다.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멀고도 먼 나라를 이제 내가 현실로 마라톤을 하기 위해 미국행 항공기를 탑승하였다는 사실이 좀 채 실감할 수 없다.
유년시절 동심에서 이야기 하던 동화속의 나라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저 막연히 땅 속 깊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기억될 뿐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드디어 하나의 작은 새가 되어 드높은 창공을 날고 날아 무려 15시간여의 비행 끝에 이국만리 보스턴가에 안착하였다.

대회일에 맞추어 현지적응을 위해 이틀 전에 도착하여 각종 쇼핑센타에 이어 간단한 관광을 한후 대회장으로 이동하여 부산하게 물품을 보관하고 출발라인에 운집한 군중속을 가로질러
지정된 나의 출발그룹에서 대기한다.

당시 4월의 두 번째 주의 월요일로 기억되는데, 계절적으로 보면 봄의 중간 지점에 진입한 터이라 아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정도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렵인데, 당일 보스턴의 날씨상황은 섭씨 30도 전후의 폭염으로 작열하고 있었다.

마치 혹서기마라톤을 방불케하는 대회.
소문에 의하면 그 날의 더위는 이제까지 보스턴사상 유례없이 가장 무더웠던 것으로 회자되었다.
여타의 보통의 대회와 달리 보스턴마라톤은 정오에 출발하는 것이 특이하다.
나는 이 대회를 신청해 놓고 참가여부에 대해서 많은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그 무렵 나의 몸은 당시 주력상태로 보아 아직 장거리마라톤을 받아들일 준비나 근력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참가 3.4주전에 열렸던 mbc대회에 이어 제민일보 주최의 각 하프종목에 출전하여 무리한 레이스를 한 결과 왼쪽종아리 근육과 오른쪽 허벅지부분의 부상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참가예약을 한터이라 참가를 포기하면 선약금 500,000원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정 때문에 일단 참가는 하되, 전혀 기록을 의식함이 없이 관광이나 하고 오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가를 결행했던 것이다.

이만여명의 운집한 보스턴광장 중간부분에 위치하여 서성거리고 있노라니 갑자기 오색영롱의 축포를 발사하는가 싶더니 출발이다.

선두주자를 중심으로 물결을 이루어 서서히 움직이는 대열을 따라 주로의 공간을 찾아 올챙이처럼 간신히 빠져나와 5킬로 지점정도에 이르자 탁 트인 도로와 경관에 매료되어 그만 처음에 나와의 약속도 잊은 채 몸은 부상징후의 통증도 아랑곳없이 적정페이스를 초과하여 내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보스턴 거리의 계측은 우리와 달리 마일단위로 표시하기 때문에 정확한 거리감각은 없지만 아마도 25킬로 지점인 듯싶다.
부상후유증의 통증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양쪽다리 종아리근육이 경직되어 더 이상은 달릴 수 없다.
의지와 정신은 마냥 앞으로 나가려고 질주본능을 자극하지만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천천히라도 달릴려고 하면 할수록 근육뭉침현상이 극심하여 쥐가 올라오려한다.

할 수없이 걸음반 뜀반으로 겨우 해서 30킬로 지점에 이르렀다.
말이 뛴다는 것이지 사실은 제대로 걷는 속도에도 미치지 않는 느린 수준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뛴다는 것은 고사하고 걸음걸이도 걸을 수가 없다싶어 포기를 하려고 인도에 벌렁 드러누워 종아리근육을 풀어보는데 속수무책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극심한 통증으로 쥐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얼마나 지났을까. 인도에 드러누워 회수차량이나 구급대원을 기다리며 20여분을 지체해도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하염없이 제기되는 패배의 좌절감으로 인한 분루만이 더욱 처절한 형태로 전락하여 마치 동물원의 기이한 모습의 침팬지가 되어 흘러가는 수 많은 주자들에게 제공되는 구경거리의 수모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일어나 걸어보는데 도저히 걷는다는 것도 버겁다.

한발 한발 놓을 때마다 수반되는 극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이후 남은 12킬로를 겨우 걸어서 완주는 하였으나, 4시간 38분의 최악의 기록이다.

극심한 통증도 최악의 기록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치유가 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기에 참을 수 있으나, 지금까지도 가장 수모로 남아 영원히 그날의 회한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잃어버린 한국인의 자존심 때문이리라.

30킬로 이후에 기진맥진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부림으로 겨우 걸어서 피니쉬라인을 향하여 터벅터벅 걸음을 옮길때마다 주로에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아아! 대한민국! 힘내라!!”고 외치며 힘찬 응원전을 펼치던 우리교민들을 보기가 민망스러워 고개를 떨구고 심한 자괴감에 전율하던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상기하노라니 미련스럽게 부상을 무릅쓰고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듯 천방지축으로 내달리던 자신에 대한 징벌의 대가가 아닌가싶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날아가고 싶은 곳이 보스턴 가인데, 언제 다시 내 평생에 이런 기회가 또 올것인가?
지금 쯤 참가하여 내 달릴 수 있다면 보란 듯이 드높은 제주인의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힘찬 질주로 역동적인 레이스를 펼쳐보련만 강한 아쉬움으로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100회 마라톤클럽에 가입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하고 나서 깊은 통찰을 통한 깨달음으로 비로소 전국의 온라인클럽인 100회 마라톤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인생은 苦海이며 시련과 도전을 통하여 피어나는 忍冬草인 것이다.

무사안일의 편이를 찾아 안주하려는 나약한 심성을 독려하고 강인한 체력과 유연한 몸가짐으로 역동적인 생활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을 병행하여 한 달에 최소한 2회 이상 풀코스대회에 참여하며 대회가 없는 주말에는 풀코스에 상응하는 거리를 달린다는 목표를 수립함으로써 매주 풀코스를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체력을 연마하고자 한다.

사람이 단지 꺼져가는 불꽃처럼 생명을 유지한 채 무위하며 부실하게 100년을 산다하더라도 별로 의미있는 삶의 가치는 아닐진대 이왕지사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면서 힘찬 동력으로 운행하여 건실한 최후를 받아들임이 보다 실속있고 가치있다고 판단된다.

최소한 평생에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 이상 완주한다는 취지에 부응하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에 안주하지 않고 200회, 300회 나아가 500회까지라도 계속 이어나간다는 목표를 갖고 절차탁마하는 숭고한 이념을 존중하고 이에 부응하여 영원한 100회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마라톤은 철학이며 깊은 사색과 필승의 신념으로 도출되는 인고의 결실이다.

마라톤은 그 자체가 인생이며 깊은 철학이다.
또한 마라톤은 깊은 자기성찰과 필승의 신념에 의해 도출되는 인고의 산물이다.
한편 마라톤은 자기수련과 극기과정의 지고한 가치와 유순하고 어진 심성을 잉태하는 참선의 요체라 생각한다.

사람이 출생하여 무덤에 이르는 그날까지 고진감래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확고부동한 신념과 철학이 없다면 매사에 우유부단하여 색깔이 없는 결과 혼미한 방황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바로 마라톤은 일시적 유희나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다.

인생이란 결코 가식적이고 일시적인 토양에 의해 서식하는 잡초의 연극이 아니며 비로소 끊임없는 도전과 수련을 통하여 진솔한 인격체의 무대에서 성장하는 목적적 존재인 것처럼 마라톤은 진지한 자기와의 대화를 통하여 고른 페이스를 유지하고 필승의 신념으로 철저한 자기관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임이며 그 자체 깊은 자성을 촉구하는 인생수련의 교과서이다
.
미사여구의 솔깃한 말이나 이념논쟁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으며 진솔한 자기혁신과 실천적의지로 표출된 의연한 행동만이 결승점의 풍요로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라톤!
그렇다. 인생은 마라톤인 것이다.

인생의 수명이 80을 기준하여 보면 내가 막 지천명을 맞는 지금이야말로 분명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돌아 에너지가 고갈되는 30킬로 지점에 이르렀음을 말함이요, 일출 후 일몰전까지 하루의 태양을 기준하여 보면 또한 오후 2시에서 3시에 이르는 시간대에 와 있음을 지칭함이 아닐까싶다.

하루의 절정은 정오가 아니라 정오를 지나서 오후 2시에서 3시에 이른 무렵에 최고의 기온이 상승하고, 마라톤에서의 백미는 바로 반환점이아니라 반환점을 돌아 30킬로 지점에 이르고 나서 최고의 난투극을 맞아 명승부를 가리는 게임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라톤 풀코스에서 30킬로까지는 내장된 에너지나 충전된 힘을 바탕으로 왔다면 앞으로 남은 12킬로는 힘의 안배가 아니라 지고한 정신력과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분출되는 필승의 집념만이 완주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자! 아마추어의 꿈 서브3의 길로

지금까지 나는 마라톤이라는 문턱에 진입하여 나름대로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면서 항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마스터스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동경하던 보스턴마라톤참가권 확보와 더불어 실제로 그 꿈의 무대에 참가하는 행운과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마스터스의 그 세 번째 완벽한 꿈의 실현을 위하여 명실상부한 고수의 길인 이른바 서브3을 향하여 주사위를 던진다.

어차피 본시 인생이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미완성의 불안하고 자기 모순적 존재가 아니던가.
다만 이러한 미완성의 불안하고 자기모순의 존재를 깨달아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또는 완전한 상태를 터득하고자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무지몽매에서 새로운 지식을 찾아 알고 깨우쳐 나가는 즐거움과 자신감이 학습의 요체이며 구도를 향한 인생의 진면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조금 알고 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더욱 겸허한 자세로 정진하여 깊고 넓은 지식의 충전을 위하여 갈고 닦으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창조적 인생을 말함이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의 심연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말처럼 무지에서 깨어나 지식의 보고를 찾아 나서고, 알았으면 안다는 자체로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 치는 삶의 현장에 접목함으로써 실용주의적 삶의 풍요로운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 또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제 마라톤에 입문하여 엎어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걸음마 단계를 익힌 마당에 감히 마스터스의 꿈의 세계인 서브3의 길로 진입하기 위해 진력하고자 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직립보행에 익숙하기 까지는 약 1년이라고 한다면 마스터스들이 마라톤에 입문하여 서브3 문턱에 진입하는데 소요되는 통상 예정기한은 약 4년 정도가 필요한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소의 기간의 장단은 다르더라도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 생각해본다면 우선 사람이 나서 직립보행을 익히기까지 약10개월 후 1년까지의 과도기 과정을 거치면서 넘어지고 엎어지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걸음마를 익히는 것처럼 태생적으로 달리는 자체가 습관화 되어 있지 않는 현대인이 달리기에 적응력을 갖출 수 있는 기간도 약 2년이 소요되는 듯싶다.

본인이 경험을 비롯하여 주변의 달림이들이 주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 각양각색의 자세나 포즈로 달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먼저 달리기에 입문하여 일정한 숙련상태에 이르끼까지는 무수히 뒤뚱거리거나 곤두박질하여 쉽게 넘어지는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거치면서 내가 어느 정도 달린다는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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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이섭님의 댓글

고이섭 작성일

벗의 글 잘 읽었오!
한글 한문장 다 버릴수 없이 고귀한것들 가슴에 와 닿소
청년시절의 이야기 특히 뭉클한 감정 감출수가 없었다오
설정한 목표 보다  훨씬 웃도는  결과를 얻을것 같은 예감이 드는것은
이형의 글에서 얻은 결론이오

부상없는 건강한 달리기 새해에도 쭈~~욱 이어 가시게....

김동욱님의 댓글

김동욱 작성일

형님에 글에 눈물도 나고 가슴이 너무나
뭉클합니다.
형님에 글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옮겨 가겠습니다.
08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
번창 하시길 기원합니다.
참 형수님께 안부 부탁 드립니다!
힘!!!

박세현님의 댓글

박세현 작성일

고난의 인생역정과 마라톤이 한편의 주마등처럼
흐르고, 수채화처럼 잘 어우려져
100회인의 "멋"이 우러나는 것같습니다.

양과 질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달려서, 기필코
500회 완주와 써브쓰리 100회 달성을 기대합니다.

끝까지 인내를 갖고
잘 읽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상남 형!  힘~~!!
 

노영기님의 댓글

노영기 작성일


초심을 잊지않고 모든일과 달리기에 충실하는 열정을
본 받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8년 하루하루 모든
시간들이 행복한 시간들로 충만되시기 바랍니다. 힘!!!

김정석님의 댓글

김정석 작성일

갑장님의 글 참으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내가 인내력이 약하여 장문을 잘 읽지 못하는데
읽어가며 멈출 수 없는 역경의 인생을 소화해 나가는
갑장의 인생 길에 숙연함이 더해가며.

이 글을 읽는 것을 멈춘 다면 감히 갑장이라 부르기에
부족할것만 같은 마음에 결코 놓칠 수 없는 글 내용
이기에 읽는데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옆에 간식까지
먹어가며 읽었습니다.

갑장의 글을 일어가며 나의 마라톤 기록에도 자신감을
얻는 대목이 갑장의 최초10km 기록과 하프 기록에 비하면
내가 더 훨  빠랏다는 대목에 나도 노력 하면 꿈의 써브 3도 가능
하다는 대목입니다.   

2007년11월24일은 갑장님과 내가 공통점은 갑장님은
100회 달성이고 나는 고작 20회 달성 입니다.

앞으로 갑장님의 말톤이력에 꿈과 희망이 가득하며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주 하시길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이상남!!!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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