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울트라완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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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현분 댓글 5건 조회 2,291회 작성일 07-05-31 08:43본문
사람들이 왜~이런 긴 울트라를 만들어서 나를 힘들게 할까?ㅋ 걸으니까 땀이 식고 밤 이슬은 내리고 강가 물안개 때문에 축축해서 추워지고, 저체온증이 있는 나를 불안하고 겁먹게 한다. 온몸과 옷이 차갑고 손은 얼음처럼 더 차다. 갑자기 배도 고파서 아까 반환점에서 받은 초콜렛과 홍삼액을 먹고 비타민도 먹었다.
힘들고 춥고 배가 고프니 무서운 생각까지 들고...무서움을 몰아내려고 아주 작게 힘빠진 목소리로 노래를 읊조려 본다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출발후 1시간후쯤 전화를 했던 아들이 생각 났다 100k대회에서 뛰고 있다니까 "엄마 숨차니까 빨리 끊을께요 잘 뛰세요 기도 할께요"했던 아들은 곤하게 자고 있을테지
추워서 뛰다 걷다를 하던 고개 정상 75k에서 따뜻한 오뎅국을 주는데 배는 고파도 넘기기가 힘들다 그래도 억지로 먹고 스트레칭을 쬠 한후에 다시 80k를 향해서 뛰는데, 어라?..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얼핏 보니 여자인듯한 사람 두명을 추월했다. 아뿔사..ㅉ 내가 너무 마니 쉬어서 추월을 당한 거구나 하는 생각에 쉬지 않고 열심히 뛰는데 다행히 쥐가 안나고 졸리지도 않고, 걱정했던만큼 무섭지도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점점 지치고 페이스가 떨어진다 나는 마라톤을 할때 시계를 일부러 자주 안본다 원래 기록이 빠른편이 아니라 시계를 자주 보다보면 마니 뛴것 같은데 거리로는 기대만큼 멀리 못가서 실망하고 지루해서 의도적으로 풀 뛸때도 5k,10k에서만 보는 습성이 있다 특히 울트라 뛸때는 깊은밤에 시계를 보면 무서워서 시간을 모르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으로 안본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간을 알고 싶어도 시계 보는걸 참으며 뛰었다
어제 저녁 출발 할때 어둑어둑 해지는 들녘에서는 전화 벨소리도 안들릴만큼 큰소리로 개구리가 개굴개굴~ 노래를 하고 하루 살이들은 눈앞에서 알짱 거리다가 입으로 눈으로 들어가더니 밤이 깊은 지금은 곤충도 짐승도 나무도 풀도... 다 자나보다 이따금씩 소쩍,소쩍,소쩍...소쩍새만 잠 못이루고 구슬피 울어댄다 고생을 사서 하는 나도 못자고 뛰는 주자들 발자국 소리 때문에 주인 지키는 동네 개도 못자고...
75k에서 80k까지는 지쳐서 평지에서조차 뛰다 걷다를 반복 한다. 생각으로는 뛰어야 하는데, 몸이 따라 주지를 못해서 나도 모르게 힘내..힘내..힘을 내봐!!! 하며 주문처럼 혼자 중얼거리면 거짓말처럼 조금씩 다시 뛰게 된다. 사방이 깜깜한 어딘지도 잘 모르는 이곳을 혼자서 뛰고 있단 생각을 하면 느닷없이 무서워져 가능한 헤드램프가 비추는 앞만 본다 천만 다행인건 헤드 램프가 유난히 밝아서 무서움이 한결 덜하다. 뛰다 걷다를 마니 해서인지 80k 표시판은 징그럽게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하긴 100km?...내가 지금 두발로 뛰고 있어도 거리가 상상이 되질 않으니까~ㅋ
지친 상태로 안간힘을 쓰며 뛰고 있는데 갑자기 뭔차가 스르르..서더니 "그러케 힘든걸 왜 뛰고 있어? 힘든데 그냥 차 타고 가지. 태워다 줄 테니까 타고 가" 하는 소리에 옆을 보니 웬 상아색 에쿠스 승용차? 열린 창문 안으로 100회 신원기님이 빙그레 웃는다 그 힘든 와중에도 손을 설레설레 저으며 안탄다고 했더니 "뭘 줄까? 뭐 필요해? 물,커피,콜라,얼음,빵?..다 있는데" 하며 트렁크를 여는데 구세주를 만난듯이 반갑고 고마워서 감동...역쉬 울트라를 마니 뛰어본 분이라서 힘든 사정을 알고 나와 준거구나ㅎ
차가운 콜라를 실컷 마시고 배낭 물병에도 채우는데 이것저것 막 챙겨서 배낭에 더 넣어 주고는 이따가 골인하는건 못보고 지방 간다며 너무 빠르다고 천천히 잘 뛰라 하고는 평소 산도사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나는 다시 뛰고 달리고...80k 표지판은 나를 시험이라도 하는건지 아무리 가도 안 나오더니 내 끈질긴 지구력에 항복?하고 만난 시간은 새벽 3시 39분. 이제 남은 거리는 하프도 안되는 20km 참으로 힘겹게 마음으로 목표한 10시간 이내에 나는 80k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k...90k까지는 1시간 20분을 쓰자 하며 스스로에게 후한 인심이라도 주는 기분으로 또 간다 언제나 날은 밝아 오려나... 너무 깜깜해서 더 고독하고 지루해서 세상이 빨리 보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졸리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이 없다. 90k가 너무 멀다는 느낌만 들뿐...그냥 천천히 마냥 뛸 뿐이다 왜? 뛰냐건...그냥 제 정신이 아니니까!!! 하고싶다. 정말 미친 짓이야ㅎ
내가 마라톤 하면서 배운 가장 큰 진리??...마라톤은 시작하고 중단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뛰다가 죽을만큼 힘들어도 완주한 후에는 아무리 힘이 없어도 웃을 기운은 있다는 거다^^그런 생각으로 나는 지금도 90k를 향해서 한발한발 가고 있다. 얕으막한 언덕일지라도 너무 힘들다 악바리 근성의 야생마 지구력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멀고 먼 90k가 언덕을 넘으니 저만치 내리막 끝에서 나를 반긴다.
시간은 5시3분 드디어 세상도 보이기 시작 하고...이제 10k만 가면 나는 완주다 모자에 부착했던 헤드램프를 풀어서 배낭에 넣고 홀가분하게 간다.하지만 출발할때 사정없이 내려오던 깔딱 고개를 어찌 올라가나?
평소 같으면 1시간내로 뛰는 10k를 나는 얼마가 걸릴지...열심히 그냥 간다 생각하기도 힘이 들어서...나는 뛴다고 뛰지만 누가보면 걷는 수준일테지 그런데도 걸어가는 주자들을 추월하고 지쳐서 걷는이들에게 "화이팅!"을 해주며 간다. 이렇게라도 95k 표지가 있는곳까지 걷지말고 뛰어야지 그런 다짐으로 1시간 가량을 달린것 같은데 95k 표시판은 도무지 뵈지를 않는다
주최측에서 깜짝 이벤트로 그냥 바로 골인하게 하려고 마지막 5k 표시는 생략?했나 보다. 그런 깜찍한 기대로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걸으면서 시계를 보니 정확히 30분밖에 뛰지를 못했다 그리고 1k쯤이나 더 가서 나를 놀리듯이 95k 표시판은 얄밉게 서있고...나머지 5k는 그야말로 깔딱 고개.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마냥 걷는다
12시간대에 못들어가도 할수 없지 힘든데 어쩌란 말인가..해가 뜨려나 보다. 동녘 하늘이 첫사랑을 하는 처녀의 볼처럼 빨개진다 조금만 뛰어 볼까? 해가 퍼지면 더 지치니까...하지만 생각뿐 금방 다시 걸으며 주최측에게 한 바가지 원망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러케 잔인할수가 있을까!! 골인 지점을 높은 언덕배기에다 해놓고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며 지네들은 즐기고 있는 걸까? 주최측 행사 봉고차가 올라가면서 차도 힘든지 엔진 소리를 크게 내 뿜는다
드디어 메아리처럼 마이크로 골인하는 주자들의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홍현분씨 여자 2위로 들어 옵니다. 하는 말이 들리는데 강건너 남의 말인것처럼 나와는 무관한듯이 들린다 자봉자들이 구수한 황태국 드시라고 하는데도 너무 지쳐서 도저히 먹을수가 없고 울렁 거리기만 한다 완주 시간은 12시간36분37초 마음으로 계획한대로 12시간대에 완주했고 물집 하나 없다. 온몸과 마음이 지쳐 있지만 건강하게 완주할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나서 자봉하신 신원기 선배님, 전화로 힘을 주신 100회의 미영언니 영숙언니 이복의 선생님,교회의 양집사님등등...저를 아는 모든 분의 관심과 응원으로 제가 무사히 완주할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뻑^^
댓글목록
오석환님의 댓글
오석환 작성일
간만에 울트라 완주기를 읽으니 2년전 뛰었던
북한강 105K 대회가 생각나는군요.
아무것도 안보이는 깜깜한 길에서 고독과 함께
그야말로 사투를 했던 밤...
쮸쮸바, 콜라, 아이스케키도 생각나고
두신형님의 깨진 이마에 붕대 감고 완주하던 모습,
제한시간을 불과 몇분 남기고 골인하신 전순형회장님의 모습,
사먹을곳도 없는 코스에서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을때
짠~하고 나타난 상학씨, 서구씨...
고생하셨습니다.
빠른 회복하시고 고비에서도 탈없이 무사히 완주하시길...
신두식님의 댓글
신두식 작성일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우리클럽에는 하도 기인들이 많아서 어지간해서는 명합도 못내미는 데
현분님은 기인 반열에 올라도 충분하겠습니다..
글 솜씨 또한 일품이네여
같이 하지 못해도 생동감이 생생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로 달리는 모습 자주 뵙길 바랍니다...
신원기님의 댓글
신원기 작성일
수고 하셨읍니다
밤길을 뛸때 뒤에서 보고 앞에서 봐도-------으 음 과연(야생마) 마쟈요
속초 파라호 부근에서 300키로 연습주 하는 잉간들 있어가 겸사 겸사 들렀읍니다
규선 성님은 아무리 차쟈봐도 없어가 기냥 왔읍니다---죄송합니다
당일 시골에 볼일 잇어가 종점에서 못뵈 죄송합니다
항상 부상없는 즐런 하세요-------------야 생 마------------히임
김광현님의 댓글
김광현 작성일
내 자신이 주로에서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속에
생생한 울트라 완주기 잘 읽었습니다.
내리막에서의 가속을 줄이는 여유로움까지 보여주시는 것을 보니
6월 대장정을 앞두고 이제 몸만들기는 다 끝났는 듯한 느낌이 팍팍 오네요.
이러다 융푸라우에서는 큰 일 내시는 것 아니어요?
박인철님의 댓글
박인철 작성일
홍현분 고수님~~~~
고수님께 댓글 다는것도 영광이군요,,^&^;
글은 또 와이리 잘쓰시는교??
참말로 부럽습니데이~~~~~
홍현분님 힘ㅁㅁㅁㅁ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