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우 님의 100회 완주에 대한 단상 - 장년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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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사골 이재학 댓글 0건 조회 2,421회 작성일 04-11-03 02:02본문
**고영우 님의 100회 완주에 대한 단상 - 장년의 승리 (복사골마라톤클럽 이재학)
중앙마라톤에서도 100회 완주자가 나온다고 하던데 누군가. 박용각 님이 100회 완주의 물꼬를 튼 이후로 가을 단풍을 벗하며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그것은 풀코스 100회 완주자와 함께 달리는 것이다. 춘천마라톤에서는 장영신 님이 여성 1호 100회 완주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 가끔 100회 마라톤클럽의 홈피를 방문하는데 이번 중앙마라톤에도 100회 완주의 주인공이 있다. 가만히 이름을 보니 고영우 님이시다.
고영우 님, 아! 그분. 복사골 이청규 님과 박용각 님이 말 한 그분 하는 생각이 난다. 두 분은 고영우 님이 연세도 많으신 데 마라톤은 기본이고 철인 3종 경기와 200km 울트라 마라톤까지 즐기는 열혈청년(?)이라 했다. 요즘처럼 젊은이가 패배 의식에 젖어 도전 정신이 실종된 시대에 이 같은 어른들의 왕성한 활동과 적극적인 도전은 사회의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을 줄 수 있어 좋다며, 우리도 마라톤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덕담을 나누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만히 100회 마라톤클럽의 홈피에서 고영우 님의 마라톤 이력을 본다. 먼저 1996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마라토너의 눈으로 보면 1996년은 마라톤 대중화의 새싹이 막 발아한 시기이다. 얼핏 고영우 님이 초창기 마라톤 클럽 창설에 함께 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1996년 동아마라톤에서부터 시작된 고영우 님의 마라톤 여행의 대장정이 백두대간의 능선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다. '참 많이도 뛰셨구나. 하긴 그러니까 100회 완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영우 님은 어떻게 풀코스 100번을 뛸 생각을 했을까. 고영우 님에게 첫 풀코스는 어떤 의미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무리 청년의 기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렇지 백 오리가 얼마나 멀고 고단한 길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고영우 님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마도 고영우 님의 연세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인 활동을 했던가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일선에서 물러날 시기에 도전을 시작한, 그것도 세상에서 무지막지하게 힘들고 고독한 마라톤 100번의 완주라는 꿈을 갖게되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날 이후 고영우 님은 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또 어떨까. 나는 잘 알고 있다. 마라톤 완주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지. 오죽했으면 첫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마라톤 42.195km의 환희'(나는마라토너다에서 2000춘천마라톤 참가기 제목)라 했을까. 젊은 사람의 기쁨도 이 정도인데 연세 드신 어른들의, 특히 고영우 님이 느끼는 맛난 행복의 질감이 어땠을까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마라톤을 한 번 뛸 적마다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니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100번째 완주를 목전에 둔 고영우 님은 얼마나 가슴이 설렐까. 고영우 님은 한 번도 아닌 100번의 인생을 살면서 100가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하는 청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것은 나비가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나오는 기쁨이 아닐지...
장년(長年)의 마라톤 100회 완주와 청년(靑年)의 마라톤 100회 완주, 장년의 꿈과 청년의 꿈이 비교되는 것은 고영우 님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왕성한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長年이여 일어나라!' 외치는 고영우 님의 마라톤 100회 완주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 때문이다.
나는 중앙마라톤 출발선에서 고영우 님에게 묻고 싶다. 오늘도 1996년 동아마라톤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그렇게 떨리고 흥분 되냐고.(2004.11.3)
**고영우 님의 100회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 복사골마라톤클럽의 많은 회원님들도 님의 100회 완주를 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복사골 이재학 입니다.
중앙마라톤에서도 100회 완주자가 나온다고 하던데 누군가. 박용각 님이 100회 완주의 물꼬를 튼 이후로 가을 단풍을 벗하며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그것은 풀코스 100회 완주자와 함께 달리는 것이다. 춘천마라톤에서는 장영신 님이 여성 1호 100회 완주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 가끔 100회 마라톤클럽의 홈피를 방문하는데 이번 중앙마라톤에도 100회 완주의 주인공이 있다. 가만히 이름을 보니 고영우 님이시다.
고영우 님, 아! 그분. 복사골 이청규 님과 박용각 님이 말 한 그분 하는 생각이 난다. 두 분은 고영우 님이 연세도 많으신 데 마라톤은 기본이고 철인 3종 경기와 200km 울트라 마라톤까지 즐기는 열혈청년(?)이라 했다. 요즘처럼 젊은이가 패배 의식에 젖어 도전 정신이 실종된 시대에 이 같은 어른들의 왕성한 활동과 적극적인 도전은 사회의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을 줄 수 있어 좋다며, 우리도 마라톤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덕담을 나누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만히 100회 마라톤클럽의 홈피에서 고영우 님의 마라톤 이력을 본다. 먼저 1996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마라토너의 눈으로 보면 1996년은 마라톤 대중화의 새싹이 막 발아한 시기이다. 얼핏 고영우 님이 초창기 마라톤 클럽 창설에 함께 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1996년 동아마라톤에서부터 시작된 고영우 님의 마라톤 여행의 대장정이 백두대간의 능선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다. '참 많이도 뛰셨구나. 하긴 그러니까 100회 완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영우 님은 어떻게 풀코스 100번을 뛸 생각을 했을까. 고영우 님에게 첫 풀코스는 어떤 의미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무리 청년의 기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렇지 백 오리가 얼마나 멀고 고단한 길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고영우 님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마도 고영우 님의 연세 때문에 더욱 그랬으리라.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인 활동을 했던가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일선에서 물러날 시기에 도전을 시작한, 그것도 세상에서 무지막지하게 힘들고 고독한 마라톤 100번의 완주라는 꿈을 갖게되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날 이후 고영우 님은 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또 어떨까. 나는 잘 알고 있다. 마라톤 완주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지. 오죽했으면 첫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마라톤 42.195km의 환희'(나는마라토너다에서 2000춘천마라톤 참가기 제목)라 했을까. 젊은 사람의 기쁨도 이 정도인데 연세 드신 어른들의, 특히 고영우 님이 느끼는 맛난 행복의 질감이 어땠을까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마라톤을 한 번 뛸 적마다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니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100번째 완주를 목전에 둔 고영우 님은 얼마나 가슴이 설렐까. 고영우 님은 한 번도 아닌 100번의 인생을 살면서 100가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하는 청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것은 나비가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나오는 기쁨이 아닐지...
장년(長年)의 마라톤 100회 완주와 청년(靑年)의 마라톤 100회 완주, 장년의 꿈과 청년의 꿈이 비교되는 것은 고영우 님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왕성한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長年이여 일어나라!' 외치는 고영우 님의 마라톤 100회 완주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 때문이다.
나는 중앙마라톤 출발선에서 고영우 님에게 묻고 싶다. 오늘도 1996년 동아마라톤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그렇게 떨리고 흥분 되냐고.(2004.11.3)
**고영우 님의 100회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 복사골마라톤클럽의 많은 회원님들도 님의 100회 완주를 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복사골 이재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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