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기념하며-(복사골마라톤클럽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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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학 댓글 0건 조회 2,569회 작성일 04-10-22 10:56본문
**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기념하며-(복사골마라톤클럽 이재학)
100회 마라톤 클럽의 장영신 님이 100회 완주의 레이스를 춘천마라톤에서 한다. 공식 1호 100회 완주의 위업을 달성한 박용각 님이나 이번에 여성 최초의 100회 완주란 이정표를 남기는 장영신 님이나 본인들은 어느덧(?) 100번째 완주를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동료 달림이로서 그분들의 집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100번째 완주를 하는 날 장영신 님은 더욱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스를 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1998년 처음 풀 코스를 완주한 날의 환희가 고스란히 살아나면서 장영신 님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그 마음을 살짝 가리기 위해서도 짙은 화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100번의 마라톤 출발선에 서고 100번의 레이스를 펼치면서 어느 한 순간이고 마음이 설레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그 설렘이 없었다면 오늘의 100번째 완주는 없지 않았을까.
나는 장영신 님을 잘 모른다. 아마도 장영신 님은 나를 감자탕 식당을 하고 마라톤 책 "나는 마라토너다"를 쓴 복사골 마라톤클럽의 그 사람 하면 기억할까.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가 마라톤을 하고, 마라톤을 통해 달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장영신 님은 나의 레이스에서도 중요한 기억의 한 장면과 함께 하고 있다.
"38km 지점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 호리호리한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내 앞을 휙 하고 지나갔다. 뛰는 모습이 경쾌한 게 지친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순간 그 아줌마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저 아줌마가 오늘도 나를 추월하네. 이번에는 질 수 없지.' 나는 사력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멋쟁이 아줌마는 손을 가볍게 살랑살랑 흔들며 나와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생략 ... 벌써 두 번째 당하는 역전패였다." (나는 마라토너다의 서울을 달린다(2002동아마라톤)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바로 장영신 님이다. 두 번의 역전패를 당하고 나는 '장영신 님한테는 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대회에서 장영신 님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만 장영신 님한테 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많은 동료 달림이들이 장영신 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먼저 가기도 하고 뒤에 가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지 않았을까. 특히 나이가 젊은 남자 달림이라면 장영신 님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으리라. 오로지 내가 달리는 것으로 동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 면에서 장영신 님은 행복한 달림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여성 달림이들에게 장영신 님은 큰언니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집안에 큰딸이 큰언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영신 님이 남성 달림이에게 경쟁과 자기 반성의 대상이었다면, 여성 달림이에게 장영신 님은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장영신 님은 춘천에서 그 동안의 행복을 총결산(?)하는 100번째 레이스를 한다. 100번의 풀코스를 뛰면서 누렸던 100번의 행복을 혼자 독차지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그 행복을 많은 달림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나눔의 달리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는 100번의 마라톤을 하면서 100번의 삶과 100번의 행복을 맛본 장영신 님이 2004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 받은 가장 신나는 여성이라 믿는다.
**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복사골마라톤 클럽에서도 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기억하고 있으며 마음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복사골 이재학 입니다.
100회 마라톤 클럽의 장영신 님이 100회 완주의 레이스를 춘천마라톤에서 한다. 공식 1호 100회 완주의 위업을 달성한 박용각 님이나 이번에 여성 최초의 100회 완주란 이정표를 남기는 장영신 님이나 본인들은 어느덧(?) 100번째 완주를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동료 달림이로서 그분들의 집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100번째 완주를 하는 날 장영신 님은 더욱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스를 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1998년 처음 풀 코스를 완주한 날의 환희가 고스란히 살아나면서 장영신 님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그 마음을 살짝 가리기 위해서도 짙은 화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100번의 마라톤 출발선에 서고 100번의 레이스를 펼치면서 어느 한 순간이고 마음이 설레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그 설렘이 없었다면 오늘의 100번째 완주는 없지 않았을까.
나는 장영신 님을 잘 모른다. 아마도 장영신 님은 나를 감자탕 식당을 하고 마라톤 책 "나는 마라토너다"를 쓴 복사골 마라톤클럽의 그 사람 하면 기억할까.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가 마라톤을 하고, 마라톤을 통해 달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장영신 님은 나의 레이스에서도 중요한 기억의 한 장면과 함께 하고 있다.
"38km 지점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 호리호리한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내 앞을 휙 하고 지나갔다. 뛰는 모습이 경쾌한 게 지친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순간 그 아줌마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저 아줌마가 오늘도 나를 추월하네. 이번에는 질 수 없지.' 나는 사력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멋쟁이 아줌마는 손을 가볍게 살랑살랑 흔들며 나와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생략 ... 벌써 두 번째 당하는 역전패였다." (나는 마라토너다의 서울을 달린다(2002동아마라톤)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바로 장영신 님이다. 두 번의 역전패를 당하고 나는 '장영신 님한테는 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대회에서 장영신 님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만 장영신 님한테 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많은 동료 달림이들이 장영신 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먼저 가기도 하고 뒤에 가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지 않았을까. 특히 나이가 젊은 남자 달림이라면 장영신 님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으리라. 오로지 내가 달리는 것으로 동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 면에서 장영신 님은 행복한 달림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여성 달림이들에게 장영신 님은 큰언니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집안에 큰딸이 큰언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영신 님이 남성 달림이에게 경쟁과 자기 반성의 대상이었다면, 여성 달림이에게 장영신 님은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장영신 님은 춘천에서 그 동안의 행복을 총결산(?)하는 100번째 레이스를 한다. 100번의 풀코스를 뛰면서 누렸던 100번의 행복을 혼자 독차지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그 행복을 많은 달림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나눔의 달리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는 100번의 마라톤을 하면서 100번의 삶과 100번의 행복을 맛본 장영신 님이 2004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 받은 가장 신나는 여성이라 믿는다.
**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복사골마라톤 클럽에서도 장영신 님의 100회 완주를 기억하고 있으며 마음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복사골 이재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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