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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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영신 댓글 1건 조회 2,134회 작성일 04-10-08 08:36본문
10월 24일
정말로 꿈만 같았던 100회째 완주를 조선마라톤대회로 달성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주위의 많은 달리기 동료분들과 마라톤 매니아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되며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1998년 3월 풀코스란 얼마만큼의 거리의 감각과 느낌도
모른채 달렸던 서울마라톤대회의 완주가 제 생애 달리기 첫 시작이었습니다.
이 대회로써 저에게는 평생 가장 인상 깊은 대회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해 2년전 당시 남편이 먼저 혼자서 건강을 위한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차츰
곁에서 건강해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저에게도 유혹이 있어 처음은
달리기에 대해서는 그리 내키지 않아 하체 체력을 튼튼하고 탄력 있게 만들자
라는 명분으로 마라톤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100회마라톤 창립 회장이시자 1대 김계성 회장님과 동료분들의 인연으로
100회클럽과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100회여자마라톤 클럽을 창단하였고
현재는 100회클럽과 통합하여 마라톤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리기란...
달리는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바람을 피부로 같이
느끼며 달릴 때는 그 무엇에 즐거움의 비교가 될 수 있을련지요.
하지만....
마라톤은
말로서 다 할 수 없는 힘든 고통도 참고 삼키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누르고
달려야하는 차라리 순간 싶은 괴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골인
"오늘도 나는 42.195km를 해냈다"
순간 힘들었던 고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짜릿한
희열과 아주 기분 좋은 땀을 흘렸으므로 그야말로 최고의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갑니다.
음악을 하는 남편은 늘 곁에서 말없이 밀어주고 격려해 주곤 했습니다.
한때는 마라톤이 싫어졌고 다시는 않겠다며 자신에게 다짐하고 남편에게도 선언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모든 생활을 마라톤에 빼앗기며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처음부터 시작하지를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와 관심으로 마음을 돌리려 하였고 마라톤 노래
도 만들어 들려주곤 했었지요. 그런 저를 지금의 100회라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까지는 남편의 힘이 정말 컷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00회째가 되기까지는 가장 힘들었던 때를 떠올린다면 지방대회 참가입니다 먼곳은 새벽2시 또는 3시. 4시. 5시... 출발하는 정신 고통도 많았지요. 여기에는 주위의많은 마라톤너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3년전 쯤만 해도 개인이 하루전 토요일에 하늘로 또는 육지로 출발했어야 만 했습니다.
비가오는 날이나 눈이오는 날은 정말 싫었습니다. 떠나는 차중에도 은근히 대회가 취소되었으면 하는 심통스런 마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막상 스타트가 시작되어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져들어 갑니다. 골인하는 그 순간 역시 정말 힘들었지만 한편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갈등도 많았고 마라톤 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습니다.
매 대회마다 최선을 다해 한발 한발 뛰고 또 뛰면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제 주위의 모든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 고통스런 통증도 인내하며 마지막 골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42.195km를 함께 달렸던 많은 사람들 서로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대회마다 연도의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달렸던 감사함과 헌신적인 자원 봉사님의 도움과 전국의 계신 마라톤을 사랑하는 선 후배님들의 큰 격려의 전화, 메일, 문자메시지, 등 아낌없는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이며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매주일에는 전국의 마라토너분들과 함께하는 풀코스대회 참가로 저의 연습의 전부입니다.
해외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말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같은 마라톤을 즐기는 러너로서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통하게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여유러운 모습과 부드러운 미소로 마라톤을 즐기며 밝은 눈빛으로 그 나라마다 문화를 알고 싶어하고 기억해야할 문화는 사진으로.... 그들 나름대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풀코스는 1년에 몇 번 정도가 적당한지 지금도 저 자신은 정확한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목표가 뚜렷하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참아가며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온 정열에 집념을 권합니다.
사실 100회째가 가까워지면서 어느 대회서 100회를 달성할까? 고민도 있었습니다.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던 서울마라톤에서 100회를 완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년(2005)3월까지는 여러 대회를 참가하지 않아야 하는 너무 긴 공백 기간이 될 것 같았고 동아마라톤 역시 저에게는 의미가 매우 깊은 대회이지요 마라톤 입문후 첫 우승을 동아에서 최고의 기쁨을 얻었으며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회 일정 사정과 이유로 그래서 100회 완주는 조선 마라톤에서 100회째를 달성할 수 있는 날로 결론을 보았습니다.
처음 입문 당시 조선마라톤 참가 대회는 여러 추억이 많습니다. 물론 입상과 현재에도 개인 최고 기록 역시 조선마라톤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조선마라톤 대회 완주는 저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도전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저의 작은 소망이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대회마다 기록에 관계없이 최선으로 임했고 수없이 찿아드는 어려움도 극복하였으며 자신과의 싸움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기어코 결승점에 두팔을 올리는 우승의 기쁨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도전은 영원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물론 풀코스를 계속 뛸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해외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세계 여행겸 그 나라마다 문화와 역사를 알고 취미를 갖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역사적인 날 우리나라 사계절중 가장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전국의 달림이들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설래이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머리를 올렸던 서울마라톤과 첫 우승을 안겨준 동아마라톤 사장님의 축하를 받으며 100회째 완주 달성을 했더라면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 마라톤이 존재하는 날까지 영원히 풀코스를 사랑 할 것입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오래도록 계속 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로 꿈만 같았던 100회째 완주를 조선마라톤대회로 달성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주위의 많은 달리기 동료분들과 마라톤 매니아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되며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1998년 3월 풀코스란 얼마만큼의 거리의 감각과 느낌도
모른채 달렸던 서울마라톤대회의 완주가 제 생애 달리기 첫 시작이었습니다.
이 대회로써 저에게는 평생 가장 인상 깊은 대회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해 2년전 당시 남편이 먼저 혼자서 건강을 위한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차츰
곁에서 건강해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저에게도 유혹이 있어 처음은
달리기에 대해서는 그리 내키지 않아 하체 체력을 튼튼하고 탄력 있게 만들자
라는 명분으로 마라톤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100회마라톤 창립 회장이시자 1대 김계성 회장님과 동료분들의 인연으로
100회클럽과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100회여자마라톤 클럽을 창단하였고
현재는 100회클럽과 통합하여 마라톤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리기란...
달리는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바람을 피부로 같이
느끼며 달릴 때는 그 무엇에 즐거움의 비교가 될 수 있을련지요.
하지만....
마라톤은
말로서 다 할 수 없는 힘든 고통도 참고 삼키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누르고
달려야하는 차라리 순간 싶은 괴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골인
"오늘도 나는 42.195km를 해냈다"
순간 힘들었던 고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짜릿한
희열과 아주 기분 좋은 땀을 흘렸으므로 그야말로 최고의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갑니다.
음악을 하는 남편은 늘 곁에서 말없이 밀어주고 격려해 주곤 했습니다.
한때는 마라톤이 싫어졌고 다시는 않겠다며 자신에게 다짐하고 남편에게도 선언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모든 생활을 마라톤에 빼앗기며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처음부터 시작하지를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와 관심으로 마음을 돌리려 하였고 마라톤 노래
도 만들어 들려주곤 했었지요. 그런 저를 지금의 100회라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까지는 남편의 힘이 정말 컷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00회째가 되기까지는 가장 힘들었던 때를 떠올린다면 지방대회 참가입니다 먼곳은 새벽2시 또는 3시. 4시. 5시... 출발하는 정신 고통도 많았지요. 여기에는 주위의많은 마라톤너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3년전 쯤만 해도 개인이 하루전 토요일에 하늘로 또는 육지로 출발했어야 만 했습니다.
비가오는 날이나 눈이오는 날은 정말 싫었습니다. 떠나는 차중에도 은근히 대회가 취소되었으면 하는 심통스런 마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막상 스타트가 시작되어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져들어 갑니다. 골인하는 그 순간 역시 정말 힘들었지만 한편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갈등도 많았고 마라톤 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습니다.
매 대회마다 최선을 다해 한발 한발 뛰고 또 뛰면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제 주위의 모든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 고통스런 통증도 인내하며 마지막 골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42.195km를 함께 달렸던 많은 사람들 서로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대회마다 연도의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달렸던 감사함과 헌신적인 자원 봉사님의 도움과 전국의 계신 마라톤을 사랑하는 선 후배님들의 큰 격려의 전화, 메일, 문자메시지, 등 아낌없는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이며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매주일에는 전국의 마라토너분들과 함께하는 풀코스대회 참가로 저의 연습의 전부입니다.
해외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말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같은 마라톤을 즐기는 러너로서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통하게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여유러운 모습과 부드러운 미소로 마라톤을 즐기며 밝은 눈빛으로 그 나라마다 문화를 알고 싶어하고 기억해야할 문화는 사진으로.... 그들 나름대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풀코스는 1년에 몇 번 정도가 적당한지 지금도 저 자신은 정확한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목표가 뚜렷하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참아가며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온 정열에 집념을 권합니다.
사실 100회째가 가까워지면서 어느 대회서 100회를 달성할까? 고민도 있었습니다.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던 서울마라톤에서 100회를 완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년(2005)3월까지는 여러 대회를 참가하지 않아야 하는 너무 긴 공백 기간이 될 것 같았고 동아마라톤 역시 저에게는 의미가 매우 깊은 대회이지요 마라톤 입문후 첫 우승을 동아에서 최고의 기쁨을 얻었으며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회 일정 사정과 이유로 그래서 100회 완주는 조선 마라톤에서 100회째를 달성할 수 있는 날로 결론을 보았습니다.
처음 입문 당시 조선마라톤 참가 대회는 여러 추억이 많습니다. 물론 입상과 현재에도 개인 최고 기록 역시 조선마라톤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조선마라톤 대회 완주는 저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도전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저의 작은 소망이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대회마다 기록에 관계없이 최선으로 임했고 수없이 찿아드는 어려움도 극복하였으며 자신과의 싸움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기어코 결승점에 두팔을 올리는 우승의 기쁨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도전은 영원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물론 풀코스를 계속 뛸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해외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세계 여행겸 그 나라마다 문화와 역사를 알고 취미를 갖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역사적인 날 우리나라 사계절중 가장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전국의 달림이들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설래이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머리를 올렸던 서울마라톤과 첫 우승을 안겨준 동아마라톤 사장님의 축하를 받으며 100회째 완주 달성을 했더라면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 마라톤이 존재하는 날까지 영원히 풀코스를 사랑 할 것입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오래도록 계속 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목록
황중창(야생마)님의 댓글
황중창(야생마) 작성일
장영신 누님의 100회 완주를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최고 기록을 갱신한 춘천대회에서, 생애 100번째 완주를
하신다니 감개가 무량하시겠습니다.
그간 고생도 많이 하셨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기어코 이겨내어
100회까지 도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최초로 100회를 달성하실 장영신 누님!
저는 누님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